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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내일을 찾는(바라보는) 생(날) (욥19:1-22)
작성일 :  2021-11-05 10:23
이름 :  admin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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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찾는(바라보는) 생(날)    (욥19:1-22)

 

우리 성경에 이 세상 끝나는 날에는 <선한 일을 행한자(믿는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고 했습니다. 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언젠가는 사람은 한번 죽는 날이 있고 그 죽은 다음에는 내세(오는 세상)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생철학자들은 금세의 짧은 기간에서 내세, 또는 내일을 찾는 생을 치르고 갔습니다. 이 내일을 찾는 생은

 

一. 오늘에 매여 있지 않는 생입니다.

내일을 찾는 생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것들이 믿을 수 없는 패망의 성질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일어납니다(1-22절). 우리가 10리 길을 걸어보기 전에는 10리길 걷는 사람의 사정을 모르듯이 이론과 실제경험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참으로 욥은 세상것들에 대한 내막을 생생하게 체험한 산 증인입니다. 그는 아들, 딸 10남매를 가져본 사람이요, 키워본 사람이요, 그 맛과 애정을 느껴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또 긋것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이었던가도 당하여 본 사람입니다. 그는 7천마리의 양과, 3천의 약대, 5백겨리의 소, 5백 암나귀와 많은 종, 많은 친구를 가져본 사람이요, 또한 그것들이 속히 자기를 저버리고 가버리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체험해 본 사람입니다. 그는 체험해 본 사실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세상 친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2,14절). <형제들이 자기를 떠나고 지인들은 외인처럼 되었고>(13절) <자기 집에서도 수모를 겪었고>(15,16절) <아내에게 미음을 당하고>(17절) <어린아이에게서 조차 사람 취급을 못받게 되는 판국이었다고 했습니다>(18절)> 그 외에 자기 육체마저 피부와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된 지경 속에서 한 말이 바로 10절의 <나는 죽었구나>한 것입니다. 참 기막힌 세상성의 푸대입니다. 결코 믿고 의지할 만한 세상이 아님을 그는 절규하듯 증거하고 있습니다.

 

二. 세상것들과 분리되는 성질의 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1. 세상것들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것들은 정확하게 자기 본성 그대로를 가지고 욥을 대한 것뿐입니다. 곧, 이 세상 것들은 결국에 가서는 나를 떠나고 나를 울리고, 나를 절망케 하고마는 것들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세상것들 그 자체가 나빠서 그런것인가요? 결코 아닙니다. 세상것들은 정직하게 자기 성향대로 했는데 인생편에서 그것들을 태산처럼 믿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가 그 인생이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세상것들이 자기 길을 찾아 우리 곁을 떠날 때 인생도 인생의 본성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2. 인간의 본성은 영생성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만 주신 선물입니다(전3:11). 욥은 바로 이러한 새생명을 체험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것들에게 버림받고 자기 홀로 남았을 때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1:20,21) 3. 이때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다고 할 때 부활의 구원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말하자면 세상것들이 자기 본성대로 그렇게 가버릴 때 우리 인생 또한 우리 인생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을 찾는 때이고 이 때 하나님 또한 자기 일을 하시기 위해 인생을 찾아오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다시 상기 시켜 주십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가 그것입니다. 또한 인생 스스로 자기도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곧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라고 했고,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하루살이에 눌려 죽을 인생>(욥4:19), <벌레요 구더기 같은 인생>(욥25:6)이라고 했습니다. 이러고보니 오늘의 생(삶)은 결국은 내일을 찾기(준비)위해 이루워지는 생(삶)인 것이 확실합니다.

 

三. 인간 본래로 돌아가는 생(삶)입니다.

무엇입니까? 1. 확신의 생입니다. 본문에 <내가 알기에는>(25절) 한 이 말은 욥의 확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욥은 불확실한 세상것들에서 멀어질 때 확신하는 새 세계를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 본래의 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입니다. 2. 살아계신 구속자를 믿는 생입니다. 본문 25절에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많은 자녀와 종들과 재산과 명예가 간곳없이 사려졌습니다. 왜 입니까? 그것들은 욥의 생명을 대신할 구속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구속자>, <모든 환란에서 건지시는 사자> 우리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살아계신 구속자를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인생의 본래입니다. 3. 재림하시는 구속자를 믿는 생입니다. 욥은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25절)고 했습니다. 욥의 신앙은 참 대단했습니다. 얼마 후에 자기의 피가 식어지고 근육의 운동이 멎어진 다음에 그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거서 흙과 배합이 된 후에도 주님이 그를 부활시키기 위해 티끌이 되어 있는 자기의 무덤까지 찾아오실 것이라는 소망의 확신입니다. 인간의 종적이 사라져 티끌만 남아있는 곳에도 주님은 자기를 찾아오실 것이라는 부활의 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일을 향해 거룩한 걸음을 걷는 나그네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죽어사는 삶에서 일어납니다. 어느새 한해가 저물어가고 새해를 건너다보는 시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천성을 향해가는 순례의 여정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며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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